'위로 없는 날들' 책 정보
카프카는 1917년 8월 11일 새벽, 삶의 운명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큰 각혈을 겪고 나서 폐결핵 진단을 받으며 병가를 얻은 34세의 젊은 카프카는 여동생 오틀라가 있는 프라하 서쪽의 시골 마을 취라우에 머물게 된다. 역자 박술은 해제에서 “나중에 카프카가 취라우에서 보낸 이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회상한다”고 말하면서, “행복? 결핵 진단을 받고서야 얻은 행복은 어떤 것일까. ‘위로 없음’을 ‘선함’이라고 느끼는 시간은 어떤 휴식이었을까” 하고 이어서 질문한다. 이 시기 취라우에서 카프카는 내면의 더러움, 상처, 심연과 대결하고자 하는 결심을 세워놓았던 듯하다. 카프카는 철학이나 신학의 영역에 속하는 질문들, 죄와 타락, 낙원에서의 추방, ‘파괴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한 사유를 전개하게 된다. 개념적이면서도 은유적이고, 우화적인 동시에 모순적인 텍스트, 현대문학에서 가장 특이한 작품 중 하나인 《취라우 파편집》은 그렇게 탄생한다.
취라우 파편집의 작업 과정은 매우 특이했다. 카프카는 얇은 편지 용지를 네 조각으로 잘라서 쪽지를 한 묶음 만든 다음에, 109번까지의 번호를 할당하고 단상을 하나씩 적어 넣었다. 빠진 번호도 있고, 두 개의 번호를 단 쪽지도 있었고, 취라우를 떠난 이후 몇 개의 단상을 추가하거나 삭제 줄을 그은 텍스트도 생기지만, 카프카는 모든 쪽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 일종의 자기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던 것. 카프카는 생전에 이 단상들을 보여주지 않았고, 출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취라우 아포리즘(Zürauer Aphorismen)》 같은 제목 또한 후대에 붙여졌다.
《위로 없는 날들》은 아포리즘이나 단상 등 기존의 어떤 분류에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역자 박술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시작이자 불완전한 치유였던 날들의 기록이며, 위로 없는 날들의 어두운 행복이 내어준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취라우의 나날들에서 기록된 이 사유는 그렇기에 자유롭다.”
카프카의 ‘위로 없는 날들의 기록’인 《위로 없는 날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위로 없는 날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위로 없는 날들' 작가 소개
저자 - 프란츠 카프카
1883년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가보험회사에서 근무했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1년이 넘는 요양 끝에 건강을 회복했으나, 1918년 10월에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며 폐결핵도 재발한다. 이후 베를린과 프라하를 오가며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1924년 병세가 악화되자 키를링의 병원으로 옮겨가고, 6월 3일 연인 도라 디아만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다.
번역 - 박술
뮌헨 대학교에서 철학, 수학, 문학을 공부했다. 육군사관학교 철학과 조교수로 근무했으며, 힐데스하임 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힐데스하임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2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옮긴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일기》, 니체의 《비극의 탄생》(공역),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철학 파편집》, 트라클의 《몽상과 착란》, 횔덜린의 《생의 절반》이 있다.
'위로 없는 날들' 내용
선은 어떤 의미에서 위로가 없는 것이다.
-32쪽
세상을 버린 자는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그는 그들의 세상도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 동등하기만 하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진정한 본질을 예감하기 시작한다.
-63쪽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담긴 믿음의 가치만으로도 무한하니까요.”
“믿음의 가치가 있다니? 어찌 됐든 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인데, 그 안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바로 그 ‘어찌 됐든 하지 않을 수 없음’에 엄청난 믿음의 힘이 들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부정되는 가운데 믿음은 비로소 힘을 얻습니다.”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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